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균형발전 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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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is, capital of modernity(파리 모더니티)
저자 David Harvey 출판사 Routledge
문헌요약
하비에게 19세기 파리는 2개로 존재한다. 하나는 발자크의 파리이고, 다른 하나는 오스망의 파리이다. 발자크의 파리가 소설가의 인식속에서 작품으로 표현된 다양한 인간의 군상들이 저질러 놓은 파리였다면, 오스망의 파리는 당대 파리의 지사로 행정가의 인식으로 계획된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들어 놓은 파리이다.
발자크의 파리는 있는 그대로의 파리이다. 파리의 후미진 골목, 어떤 골목에는 고리대금 업자가 있고, 다른 한편에는 잡다한 변호사와 군인들이 서성이고, 또 다른 한편에는 너덧명의 매춘부가 있다. 발자크의 파리는 인간이 만들어 놓은 아름다운 삶과 이상의 구현물이다.
반면, 오스망의 파리는 철저히 ‘계획되어야’ 하는 파리이다. 발자크의 인간의 파리가 아니라 근대성에 입각한 과거와의 단절의 파리, 깨끗하게 계획된 ‘행정가’의 파리이다. 그에게 나타난 ‘근대성’은 신화이자 자신이 추진하는 파리 계획의 논리적 근거였고, 자신의 허영심, 이기주의, 업적성을 감출 수 있는 좋은 외투였다.
이 책은 이와 같이 상반된 시각을 지닌 파리에 대한 인식을 각종 사료, 문헌 등을 중심으로 철저하게 파헤친 매우 훌륭한 작품이다. 또한 100년 이상이 지난 이 시점에서 지금 읽어도 가슴이 저리도록 와 닿는 도시 역사의 현대적 복원이다. 여러분이라면 발자크의 파리를 선호하겠는가, 아니면 오스망의 파리를 선호하겠는가? 하비의 또 다른 작품처럼 ‘도시의 정의(justice)’는 어떤 측면에서 타당할 수 있으며, 과연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 정의는 존재할 수 있는가? 윌리엄 쿠퍼는 ‘인간이 도시를 만들었다’라고 주장하였다. 필자는 이 의견에 100 퍼센트 동의한다. 한 발짝 더 나가서, 그렇다면 그 ‘인간’은 누구인가가 도시를 만드는데 있어서 더욱 중요하다. 그 인간은 한 명의 행정가가 될 수도 있고, 시민 공동체가 될 수 있고, 소수 이해 집단이 될 수도 있다. 그 어떠한 인간의 유형도 도시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유형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누가 만든 도시에서 살고 있는가?
북리뷰
“신은 자연을 만들었고, 인간은 도시를 만들었다”(William Cooper)

도시는 인간이 만들었기에 누가 또는 어느 집단이 만들었는가에 따라 도시마다 다양한 모양과 속성을 지닌다. 그러므로 하나의 도시는 특정 도시공동체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대표적인 얼굴이기도 하다. 영국 출신의 지리학자 데이비드 하비의 이 책은 19세기 프랑스인들이 만든 파리의 얼굴을 정리해 놓은 것이다. 이 책은 단기간만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1960년대부터 시작된 하비의 학문생활 중 그가 도시문제에 관심을 가졌던 1970년대부터 현재까지 약 40여년에 걸쳐 이루어 졌다. 여기서 그의 작품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그의 학문적 생애를 잠깐 소개해 보고자 한다.
영국에서 태어난 하비는 1950년대 캠브리지대학교 지리학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다. 그의 박사학위논문은 영국 켄트주의 경관변화에 대한 연구였다. 이후 그는 1950년대이후 돌풍을 일으켰던 계량혁명의 실증주의 철학과 이에 기초한 지리학에 심취한다. 10년 후 그는 실증주의 방법론의 한계, 사회적 실천성의 미흡 등으로 1970년대부터 맑시스트 지리학에 몰두하게 된다. 이때부터 하비는 정치경제학 방법론에 입각하여 자본축적의 도시연구를 진행하게 된다.

하비에게 파리는 전근대와 근대의 역사가 단절된 공간이 아니라 오히려 전근대의 잠재력이 근대라는 시간적 연속성에서 공간적으로 표출된 도시였다. 하비는 이 책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근대성의 신화 가운데 하나는 과거와의 철저한 단절이라는 생각이 든다...따라서 근대성은 온건하고, 민주적인 것이든 혁명적이고 권위적이며 상처를 남긴 것이든, 종류를 불문하고 항상 “창조적 파괴”이다...나는 이러한 근대성을 신화라고 부른다...이에 비해 그의 대안인 근대화 이론은 생시몽이 처음 만들어냈고, 맑스가 대폭 지지한 것으로, 어떤 사회질서도 기존의 여건 속에 이미 잠복해 있지 않던 변화를 만들어낼 수 없다는 것이다.

하비에게 19세기 파리는 2개로 존재한다. 하나는 발자크의 파리이고, 다른 하나는 오스망의 파리이다. 발자크의 파리가 소설가의 인식속에서 작품으로 표현된 다양한 인간의 군상들이 저질러 놓은 파리였다면, 오스망의 파리는 당대 파리의 지사로 행정가의 인식으로 계획된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들어 놓은 파리이다.
발자크의 파리는 있는 그대로의 파리이다. 파리의 후미진 골목, 어떤 골목에는 고리대금 업자가 있고, 다른 한편에는 잡다한 변호사와 군인들이 서성이고, 또 다른 한편에는 너덧명의 매춘부가 있다. 파리의 다양한 군상을 보노라면, 이 도시가 지닌 다양함에 시간의 흐름을 감지할 수 없다. 이 다양함은 거리의 길모퉁이, 움푹한 구성, 비좁은 방에서 그 형체를 파악할 수도 있다. 발자크는 그의 소설 ‘인간희극’에서 숨겨져 있을지도 모를 파리의 역사적 지형에 관한 온갖 모습을 들춰낸다. 발자크의 파리는 인간이 만들어 놓은 아름다운 삶과 이상의 구현물이다.
반면, 오스망의 파리는 철저히 ‘계획되어야’ 하는 파리이다. 발자크의 인간의 파리가 아니라 근대성에 입각한 과거와의 단절의 파리, 깨끗하게 계획된 ‘행정가’의 파리이다. 이 행정가는 허영심과 이기주의에 가득차서 파리의 도로시스템을 구축하기 시작한다. 이에 황제는 ‘(도로 시스템을 구축할 때) 도시에 있는 기존의 내용적인 구조를 무시하지 말 것과 직선을 피하라’고 명령했다. 그는 이를 무시하면서 황제를 무시하고, 파리의 역사를 무시했다. 이후 그는 지속적으로, 그의 야심에 의해 상수도 보급과 파리 교외지역을 병합하는 문제를 ‘밀어붙이게’ 된다. 그에게 나타난 ‘근대성’은 신화이자 자신이 추진하는 파리 계획의 논리적 근거였고, 자신의 허영심, 이기주의, 업적성을 감출 수 있는 좋은 외투였다.
이 책은 이와 같이 상반된 시각을 지닌 파리에 대한 인식을 각종 사료, 문헌 등을 중심으로 철저하게 파헤친 매우 훌륭한 작품이다. 또한 100년 이상이 지난 이 시점에서 지금 읽어도 가슴이 저리도록 와 닿는 도시 역사의 현대적 복원이다. 여러분이라면 발자크의 파리를 선호하겠는가, 아니면 오스망의 파리를 선호하겠는가? 하비의 또 다른 작품처럼 ‘도시의 정의(justice)’는 어떤 측면에서 타당할 수 있으며, 과연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 정의는 존재할 수 있는가? 이 책은 우리에게 많은 질문을 남겨 준다. 비록 짧은 식견이지만, 필자는 다음과 같이 이 책에 대한 감상을 몇 자 적어 보고자 한다.
먼저, 하비의 도시에 대한 식견이다. 이는 그의 저작들을 통해서도 잘 나타나 있다. 그에 도시는 자본주의 축적과정의 대표적인 산물이다. 자본주의는 축정과정을 통해 도시를 만들기도 하지만, 도시의 과거를 철저하게 부수기도 한다. 이 부수는 과정에 ‘정의’란 없다. 그 정의는 발자크 같은 행정가의 ‘창조적 파괴’로 위장된 정의이다. 양극화를 치닫는 자본주의는 그 약자인 빈민층에게 어떠한 여지도 남기지 않는다. 그들의 행위는 자본주의식 윤리와 도덕에서 늘 불법이라는 새장에 갖히게 된다. 그래서 자본주의 도시에서 살아있는 정의는 ‘상위 5%’의 정의이다.
둘째, 이 책에서 제시하는 업적주의에 찌들면서 이기심과 영웅심으로 가득 찬 행정가 한 명이 파리를 뒤바꿔 놓았다는 것은 매우 인상적인 내용이다. 어찌 보면 파리는 코뮨(공동체)으로 형상화되는 시민의 도시가 아니라 한 명의 파리 지사인 오스망의 도시이다. 물론 오스망의 꿈 실현에는 많은 사람들이 찬성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서 당시의 파리를 오스망의 파리로 분류한 것은 한 명의 행정가가 지닌 야심과 그 파괴력이 대단했기 때문이다. 근대성은 그의 친구이자 무기였다. 항상 무엇인가 새롭게 형상화된 은유적이고 수사적인 표현이 한 사람의 행정가의 머리에 잘못 이식되었을 때, 그 도시는 원하지 않는 역사의 물줄기를 갖게 된다. 그리고 그 물줄기는 다양한 지류를 만들면서 복원을 위한 다음 세대를 기다리게 된다. 서울은 어떠한가? 아니 부산, 대구, 대전, 광주, 여수, 춘천, 창원 등은 어떠한가? 우리나라의 이 도시들은 과연 1인자의 도시인가 아니면 진정 시민의 도시인가? 시민의 도시라면, 시민에 의해서 형성된 도시는 특정 도시의 몇 퍼센트를 점유하고 있는가?
셋째, 세계도시 파리가 도시체계에서 갖는 환상에 대한 의견이다. 도시지리학의 전통적인 시각에서 도시는 두 가지 측면에서 접근되어 왔다. 하나는 ‘체계’적인 시각이고, 다른 하나는 ‘구조’적인 시각이다. 도시 체계란 특정 도시가 국가적 또는 세계적 측면에서 지닐 수 있는 위상과 관련된 것이라면, 도시 구조란 특정 도시의 내부에서 형성된 다양한 기능들의 공간적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우리가 파리를 여행을 할 때 ‘파리는 유구한 역사를 지녔고, 세계적 차원에서 매우 발달된 개방형 글로벌 시티’라는 매우 심정적이고 객관화된 편견을 지니게 된다. 이는 파리의 도시 구조의 역사에서 비롯된 인식이라기보다는 파리라는 도시가 세계도시체계에서 지니는 위상에서 비롯된 도시 유토피아적 선입견이다. 이 책은 관광객들이 흔히 지닐 수 있는 ‘도시 유토피아적 선입견’을 바로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즉, 관광으로서의 도시와 삶으로서의 도시는 다를 수 있으며, 이는 매우 다르다는 사실이다. 파리는 아름답다. 그러나 그 이면에서 늘 새로운 도전, 저항, 공동체 형성, 혁명, 개선 등 다양한 단어들의 파리의 역사를 만들어 왔고, 오늘날과 같은 파리의 경관을 이루어 왔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서두에 윌리엄 쿠퍼의 말을 다시 되새겨 보면서 이 서평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그는 ‘인간이 도시를 만들었다’라고 주장하였다. 필자는 이 의견에 100 퍼센트 동의한다. 한 발짝 더 나가서, 그렇다면 그 ‘인간’은 누구인가가 도시를 만드는데 있어서 더욱 중요하다. 그 인간은 한 명의 행정가가 될 수도 있고, 시민 공동체가 될 수 있고, 소수 이해 집단이 될 수도 있다. 그 어떠한 인간의 유형도 도시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유형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누가 만든 도시에서 살고 있는가?
북리뷰: 정성훈 교수(강원대학교)

※ 본 글의 내용과 방향은 지역발전위원회의 입장과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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